지중해 연안 프랑스 니스에서 차를 빌려 프랑스의 동남부 지방을 가족과 돌았었다. 국제면허는 출국전 신청하면 된다.
프랑스 남부의 평원은 끝이 없었다. 유럽의 대평원은 프랑스의 남부에 위치한 피레네 산맥과 대서양 지역으로부터 우랄 산맥까지 펼쳐진 넓은 평원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전원마을이자, 문화마을은 기후가 따뜻하고 온화한 넓은 평원 속에 작은 마을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베리 기념관도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머물며 많은 작품을 완성한 아를, 세계적인 항구 도시 마르세이유가 모두 프로방스 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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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자른 고흐에게 아를 사람들의 비난이 많아지자 스스로 찾아간 프로방스 셍 리미 드 정신병원과 고흐의 초상화
정신병원은 그야말로 으시시 했다. 금방이라도 고흐가 살아나올 것 같았고, 여름이라서인지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성자처럼 순수한 고흐의 삶은 색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벨기에 탄광촌에서 생활하면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렸던 고흐의 그림 색은 검정에 가까웠지만, 본격적인 화가로의 길을 걷기 위해서 파리에 갔을 때 인상주의를 알게 되었고, 그림 색이 밝아 졌다.
당시 유행했던 자포니즘으로 알려진 일본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리에 있는 화가들처럼 일본 판화를 수집하면서, 소위 우끼요에(떠도는 세상의 그림)라고 부르는 일본 풍경화를 보고 똑같이 그리곤 했다.
일본의 태양과 비슷한 곳을 찾아 떠나 정착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았는데 강렬한 노란색이었다. 고갱과 싸우고 귀를 자른 후 무솔 정신병원에서 불후의 명작 수백점의 그림을 남겼다.

예술가의 마을이라고 해도 무방할까? 풍요 속에 예술이 나오듯 우리나라의 곡창지대 서남부 호남지역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음식 또한 맛깔나고, 다채롭고, 풍요로왔다. 토마토, 호박, 피망, 올리브 등 이 지역에서 수확되는 신선한 채소를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태양빛이 강한 프로방스의 넓은 평원에서 나오는 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남부지방으로 모나코와 접해 있고, 식민지배를 했던 모로코와도 지중해를 따라 근접해 있다.

얼마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모로코간 준결승전 축구를 했다. 그때 모로코가 석패하자 많은 프랑스내 모로코인들이 난동을 피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20세기 초 1912년 부터 1956년 까지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는 모로코를 식민지배 했다. 다른 나라 보다는 덜 혹독하게 통치해서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모로코인들은 현재 약 150만명에 이른다.
모로코는 현재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국가중 하나이다. 그러나, 프랑스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언어도 프랑스어와 또다른 식민지배 국가였던 스페인어, 그리고 아랍어를 혼용한다.
모로코는 식민지배 동안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이 극렬했다. 그러나 유럽 전역이 2차대전 전란에 휩싸이고, 모로코는 나찌와 프랑스, 미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미국의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이때 만들어 졌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모로코에 독일 나찌가 쳐들어 오자 많은 사람들이 세 파트로 나뉘기 시작한다.
나찌에 협력하는 콜라보,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그리고, 방황하는 대중...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후 초기 혼란과 빈곤, 그리고 내전 직전까지 가는 정세불안을 겪었다. 독립후에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체화된 문화속에서 반감이 병존했다.
해방후 우리나라도 빈곤과 혼란, 그리고 내전을 겪었다. 그후,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콜라보가 집권했으며, 우월한 유전인자를 가졌음에도 일본의 문화와 폐습이 잔존하였고, 많은 부분 의존적 관계에 따라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면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각종 법령과 제도 등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공포하면서 검사와 경찰에 무제한으로 강제수사할 수 있는 자유를 줬다. 사람들을 손쉽게 잡아들이고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막대한 권한을 준 것이었다. 특히 국가치안법으로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을 잡던 법률이 해방후 국가보안법으로 둔갑해서 무고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 넣고 사형까지 시키곤 하였다.
한 예로 조봉암은 부정선거가 아니었으면 대통령이 될 상황이었으며, 이승만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지지와 능력이 았었다. 초대 농림부 장관시 토지개혁을 주도했으며,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지도자 였으나, 이승만과 특권을 누리던 친일파들에게 간첩죄로 몰려 사형당했다. 특이한 점은 당시 야당이었던 한독당의원둘도 그의 제거에 찬성하였다. 그들 또한 일정시대 특권을 누리던 지주들이었다.
그후에도, 정권에 의한사법살인은 이어져 인혁당 사건 등이 있다.
경찰이 정말 무서워, 해방후 까지도 저기 순사온다 하면 우는 아이도 그쳤다. 정상적인 법체제에서는 수사와 기소가 있고, 무턱대고 기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터링 해야 할 검찰에게 권한이 모두 중첩되면서, 검사의 힘이 무소불위 막강해졌고, 정당성이 부족한 집권자들은 악용하기 시작하였다.
나찌의 괴펠스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라고 했다 한다
법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취지를 잘 이해해야 하고, 양심과 도덕에 따라 공정하게 다루어 져야 한다. 집권세력이었던 일본인들이 법꼬리를 이용해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던 행태가 해방후에도 이어져 왔다.
나찌에 강력 저항하던 레지스탕스의 본고장 프랑스 남부와 그 지배를 받던 모로코는 결국 모두 레지스탕스가 승리했다.
프로방스와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햇살아래 풍요와 번영, 여유로움 속에 빛나는 저항정신이 담긴 예술의 혼은 아마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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