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식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이다. 베트남에서 역사적으로 오래 사용한 이름은대월 (大越)이었다. 왕조가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뀐 한국사나 중국사와 다르게 베트남에선 왕조가 바뀌어도 대월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그러다 완조가 '남월'(Nam Việt)로 이름을 고치려 했고,청나라는 중국 남부 지역을 점령한 과거 기원전의 남월 왕조와 연결지어 생각될 것을 우려해 '남월'을 뒤집은 월남(越南)이라는 호칭을 제안했다. 응우옌 왕조가 이에 찬성하면서 1806년 대월은 비엣남(越南, 월남)이 되었다.
베트남의 베트 또는 남월의 월에 해당하는 비엣(Việt / 越)은 중국 남부에 살던 민족 집단인 백월(百越)을 가리키는데 이들이 베트남 북부로 이동해 세운 나라가 남월이었다. 정완분쟁(鄭阮紛爭)과 서산조(西山朝) 시대 이후 베트남을 통일한 완복영은 국호를 남월로 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나라 때 중국 남부까지 진출했던 과거의 남월 왕조가 연상된다고 꺼림칙해했던 청나라에서 남월의 앞뒤를 뒤집은 국호인 월남을 제안하였고, 완복영이 이를 받아들여 월남이 정식 국호로 채택됐다. 이 표현의 베트남어 한자 독음이 '비엣남(Việt Nam / 越南)'이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던 시절에는 오늘날의 베트남(정치체제)의 전신이 되는북베트남을 베트민(Việt Minh) 혹은 월맹이라 불렀다. 베트민이란호찌민이 주축이 됐던 베트남 독립 동맹회(Việt Nam Ðộc Lập Ðồng Minh Hội, Ligue pour l'indépendance du Viêt Nam)에서 유래한 약칭이다. 당시에는 북베트남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베트민(월맹) 정권에 의한 불법 정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단체명으로 지칭했던 것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진영에 속했던 남베트남을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승인하고 수교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남베트남을 베트남(월남)이라고 불렀었다.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타이완 섬의 중화민국을 '자유 중국'으로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 물론 오늘날 한국은 베트민 정권이 베트남 통일 이후 수립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공식적으로 수교하고 있으므로 베트남은 곧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1955~1975년까지 베트남 인민공화국(북베트남)과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함께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군대가 남베트남에 파병되어 북베트남을 상대로 싸웠지만, 남베트남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조직인 남베트남 민족해벙전선(베트콩)에 의해 고전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던 소련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제한적인 작전만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었다. 결국 내 가족과 주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미국 내 반전운동과 여론에 밀려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고 미국의 징병제도 폐지된다. 예상 밖의 고초를 당한 미군의 군사적 명성은 크게 실추되었다. 그리고 주월미군의 철수 이후 남베트남은 고전하다가 결국 북베트남에게 패망하였다.
우리와 다른 점은 미국이 참전했는데 월맹이 승리했다. 베트남은 그 점을 대단한 긍지로 여긴다. 만약 우리도 북한이 남한을 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날의 베트남처럼 변하지 않았을까? 남북한 둘로 나뉘고, 다시 남쪽은 동서로 나뉘어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보다 더 나았을 것인가?
조선시대 태종때 코끼리를 들여온 적이 있다. 그 나라가 베트남(당시 조선에선 남만으로 불렀다)이었다.
베트남 전쟁때 파월 군인들은 용감했다. 한국군들은 6.25를 겪었고, 전투경험이 많은 장점이 있었다. 한국군이 당하면 마을 전체를 쑥대밭 만들어 민간인들이 대량 학살 당했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미군보다, 한국군을 제일 무서워 했다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잔악무도한 한국군이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공식적인 사과를 했고, 이제 다 잊혀져 가고 있다.
베트남에 큰 거점 도시는 남부의 상업도시 호지민 시티가 있고, 수도인 북부의 하노이 시티가 있다. 그외, 베트남 중부의 관광 휴양도시 다낭, 베트남 북동부의 항구도시 하이퐁, 메콩강 삼각주의 최대도시 껕터가 있다.
우리는 하노이 시티 주변, 주로 인근 골프장을 돌다 왔다. 다니는 길에 이러저러한 모습들을 많이 보았는데, 농사짓고 도로변에서 농산물(과일 등)을 파는 분들을 종종 목격하였다.



하노이(Hanoi)라는 지역명은 '강 안의 땅'이라는 의미로, 이 지역에는 홍강(Red River)과 지류들이 흐르고있어 붙여졌다.
하노이의 10월~4월은 건기 동안으로 춥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1월~3월중에는 약간의 비가 내리기도 한다.
5월~9월의 우기에는 더위와 함께 많은 비가 내리고 태풍이 찾아온다고 하니 봄, 가을이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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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자욱한 호안끼엔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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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주변 명소(못꼿 사원 및 골프장 등)
동남아의 거점 국가 베트남은 우리와 무역교역량이 크게 증가하여 세계 4위이다. 대베트남 교역은 세계 교역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16.5%로 급증했으며, FTA 발효 5년차인 지난해는 2015년에 비해 84% 증가(376억불→692억불)하는 등 우리나라 교역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대중국, 베트남 수출은 전년대비 각각 16.0%•0.8% 감소, 수입은 0.8%•6.6% 증가해 무역수지는 290억불•272억불 흑자를 기록했다.
또 2019년 전세계 무역흑자가 전년대비 44.3% 감소할 때 중국은 더 큰 폭으로 감소(48.0%)했고, 이는 중국의 내수중심 성장전략 등 국내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베트남과의 무역흑자 또한 감소(5.9%)했으나 큰 편은 아니며, FTA가 양국 교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대중국 주요 수출입품목은 반도체•컴퓨터이며, 대베트남 주요 수출품목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 수입품목은 무선통신기기•의류이다.
대중국 수입은 반도체•컴퓨터•정밀화학원료 등 중간재 비중이 높은 품목 중심으로 수입이 증가했으며, 대베트남 수입은 무선통신기기(핸드폰 및 그 부분품)•의류의 수입이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베트남은 승전국이라 스스로 생각하여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이다. 한국은 아직 분단국가이지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베트남은 한때 일본을 아시아 최고의 국가로 여겨 왔고, 일본제품이 휩쓸고 있었고,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일본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갔을 때는 전환기에 있었다. 현재 한류의 바람이 거세다.
민주주의와 문화와 경제는 병행 발전, 공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쪽이 훼손되면 다른 분야도 손상된다.
베트남은 지난해 국제연합(UN)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 선언했고, 향후 10년간 베트남 전력 개발에 관한 계획인 전력개발계획8(Power Development Plan8)을 통해 국네에서 석탄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의 소비량을 감축시키겠다는 목표를 수립하였다.
베트남은 태양광 벨트 국가이다. 우리나라가 평균 발전시간이 일평균 4시간 이내인데 비해, 베트남은 5시간 정도이고,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 비해, 정글위주의 임야 면적이 전체 국토의 30%정도 밖에 안되어 비교적 땅이 넓은 국가이다.
전력이 부족한 베트남에서 태양광 발전소 건설 의뢰가 많이 요청되고 있으며, 앞선 한국의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이용한 사업을 적극 추진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동한 쌓아올린 한국의 문화와 더불어 주력 상품중 하나가 신재생 발전 태양광이 되길 기대해 본다.
개발하고자 했던 태양열 저장 발전기를 기다리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은데,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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