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덕수궁은 이등박문 작품이 되었고, 현판 현액을 대한문 덕수궁으로 썼다. 조선은 덕수궁이 없었고, 남송때 현 중국 항주에 있었다고 한다.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은 조선 이름 림춘모, 아버지는 림세장, 조선인이면서 매국매족 매혼노였다.
1850년대 대륙에서 이땅으로 넘어와 왜족으로 변신했다.
1876년 초대 통감으로 이 땅 한반도를 통치하였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안중근의사의 총탄에 척살되었다.


이놈을 기리는 사당이 현 신라호텔 자리에 세워진 박문사였다. 또 이놈은 정동 바위에 대한을 영원히 식민지배 통치로 다스리겠다는 뜻을 새겨 넣었다.
寶祚之隆與天壌無窮
(보조지융여천양무궁)
大勳位 候爵 伊藤博文 謹題
(대훈위 후작 이등박문 근제)
1905년 11월 彫之(새김)
천황폐하께 업드려 바치오니 영원히 무궁하옵소서

이등박문의 아버지 임씨가 일본의 개노릇으로 출세하기 위해 일본과 이땅으로 와서는 자기 자식들도 매국매족 매혼노로 만들어 이땅을 천황폐하께 업드려 바치오니 영원히 다스려 달라는 뜻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조선의 땅과 바다를 내 주고, 수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안중근에게 하얼삔역에서 저격당하였지만, 아직도 민족을 팔아먹는 것이 구국이고, 선견이고, 정당한 일이라는 기류가 저변에 흐르고 있다.
이름조차 비슷하게 지어 이등박의 뜻을 이어가고자 했던 지도자도 있었다.
바다를 내 주고 육상전에 합류하라 명하였던 선조와 조정대신들..., 결코 바다를 내줄 수 없었던 이순신 장군...
근현대 역사의 상징적 기념물인 비내리는 덕수궁을 걸으며, 반역자와 밀정의 활약이 컸던 조선은 지키려는 자와 넘기려는 자들간의 다툼이 치열했음을 다시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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